더 리더:책을 읽어주는 남자_어느 개인에 관한 이야기. CiNeMa


  • 개인: 국가나 사회, 단체 등을 구성하는 낱낱의 사람
  • 단체:  1.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의 일정한 조직체 2.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 


개인은 단체의 부분집합입니다. 
개인 없이 단체는 생겨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때론 개인과 단체 안의 개인은 굉장히 다른 모습을 띄우기도 합니다. 

회사에서는 지랄맞기로 유명한 김차장이 집에서는 세상 자상한 아빠라던가
훌륭한 뜻을 가지고 모인 시민단체의 개개인은 인간적으로 불쾌한 사람들이라던가 
항상모범이 되는 장로님이 사실은 악덕업주라던가 말이죠. 

양쪽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그 모습은 전혀 다르기도합니다. 
집단 효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집단을 고른 것이 개인의 선택이라면
그 효과 역시 개인의 일면이 반영된 모습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 생각에 <더 리더:책을 읽어주는 남자>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인 한나(케이트 윈슬렛)는 무지한 여성입니다. 
하루벌어 하루를 살고 본능에 충실한 그런 인물이죠.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한나와 15살 소년인 마이클의 정사씬이 등장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황당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는데 그 이유는 야해서가 아니라 
이토록 아무런 계기 없이 금기를 깨버리는 그녀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단지 병에 걸려 토하던 소년을 집까지 바래다준 것 뿐입니다. 
그런데 고등학생도 되지 않았을지 모르는 그 소년을 
돌려보내거나 경계하지 않고 바로 자신의 삶에 들여놓은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운명적인 사랑처럼 로맨틱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시작이 가능했던 것은 그녀가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관계든 두껍고 단단한 벽을 넘고나면 뻔하고 평범한 연인관계가 됩니다. 
영화속의 한나와 소년 역시 그랬습니다. 
나이를 뛰어넘어 교감하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하는 그런 연인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소년에게 생채기를 남기고 끝이나자
영화는 그 때부터 진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세월이 흘러 마이클은 우연히 한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녀는 늙고 여전히 무지하고 나치의 친위대 이력으로 법정에 서 있었습니다. 


아마도 한나는 모르고 시작한 일 일 겁니다.
나치의 친위대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들 큰 의미도 없었겠죠. 
왜냐면 한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녀는 단지 돈이 필요했고, 할 줄 아는 일이 있었기에 누군가가 시킨대로 자신의 일에 성실히 임했을뿐입니다. 
그래서 한나는 자신을 추궁하는 판사에게 묻습니다. 

'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판사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
그녀의 무지함과 가난 속에서 홀로코스트가 어떤 의미였을지 그는 알 수 없습니다.

한나는 자신이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밝히느니 주모자가 되는 것을 선택합니다. 
황당한 표정으로 쏟아지는 비난의 원인을 알기 위해 귀기울여보지만 쫓아가지 못합니다. 


그런 한나의 비밀을 알고 유일하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은 소년 마이클입니다. 

저는 <더 리더>를 보면서 <색계>가 떠올랐습니다. <색계> 역시 개인과 단체에 관한이야기였습니다. 
영화 속의 양조위는 독립운동가를 잡아들이는 대외적으로 비열한 사람이었지만
사랑에 빠진 탕웨이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양조위와 강렬한 교감을 나눈 탕웨이는 차마 그를 저버리지 못합니다. 

실제로 <색계>의 개봉 후 그녀는 중국에서 엄청난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같은 가슴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입장에서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지만 지나친 논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색계>는 친일파를 미화하거나 비호하는 영화가 아니라 있을 법한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전달한 영화일 뿐입니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모여든 개인들은 어떤때에는 스스로 상상 해 본적도 없는 폭력적이고 무서운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죄책감은 단체라는 이유만으로 솜털처럼 가벼워지고 맙니다.

<더 리더>의 한나도 나치의 친위대라는 커다란 단체의 지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친위대는 한나같은 개인들이 수도 없이 모여 이루어진 커다란 단체였습니다. 

감옥에 수감된 한나는 마이클을 통해 글을 익혀 갑니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좁은 세계 안에 살던 그녀가 즐겁게 책을 읽고 글을 깨우쳐 가는 장면은 왠지 모르게 슬프게 다가옵니다. 
사회의 큰 물결에 휩쓸려 휘청대며 살아온 한 개인을 보는듯 해서요. 

글을 배운 한나는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됩니다. 
자신이 한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그래서 한나는 감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한나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여인은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라는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알고 싶어하지만 
그 일을 통해 배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두 여인 모두 시대에 휩쓸려간 개인일 뿐입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은 누군가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기억으로 또 다른이에게는 악몽으로 기억됩니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는 마이클이 전하러 온 한나의 이야기를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만난 한나의 모습은 이해받아서는 안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악마라고 불리우는 단체의 한 사람과 누군가가 나눈 개인적인 교감은 이렇게도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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