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달 / 요시다 다이하치 CiNeMa


가장 최근에 <종이달>이라는 일본 영화를 봤습니다.


일본영화 자체가 스펙트럼이 넓기는 하지만 그래도 크게 나누자면 

잔잔하고 감성적인 영화, 코믹하고 과장된 영화 그리고 조용하고 긴장감 있는 영화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일본 문화에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무엇에 끌리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가장 큰 이유는 특유의 어둡고 조용한 분위기인 것 같아요.  

<종이달>은 그런 일본 특유의 정서가 묻어나는 조용하고 깊은 영화입니다. 


영화는 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예술작품의 단골소재이지만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단순히 어떤 물질이나  권력 같은 것을 향한 표면적인 욕망이 아니라 

좀 더 인간 내부의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홍보되고 있는 것처럼 핀처의 <나를 찾아줘>와 유사한지도 모르겠어요. 

두 영화 모두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캐릭터는 전혀 다르지만 그 밑바닥에서 원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아요.

나를 세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나에게 맞추어 

내가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사는 것. 
 

영화는 미션스쿨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녀들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리카의 학창시절 이야기는 성인이 된 리카의 행동과 그녀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은행원으로 근무하는 리카는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도 가정에도 맡은 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갑작스럽게 낯선 대학생과 사랑에 빠지고 그를 위해 은행 고객들의 돈을 빼돌린다는 것이

처음에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위기의 주부인가 싶을정도로 불륜 상대인 애인과 보내는 시간에 깊게 빠져드는 리카를 보며 황당했습니다. 

하지만 어린시절 리카의 이야기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난 후 그녀가 원했던건 새로운 사랑이나 사치스러운 생활이 아니라 

완벽한 자유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미션스쿨에 다니던 리카는 어려운 나라의 아이들을 위한  결연모금에 참여합니다. 

모금 후 타국의 아이로부터 날아오는 감사의 편지와 그림은 그녀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계속해서 결연을 이어가는 리카와 달리 반의 다른 친구들은 금새 흥미를 잃고 모금하는 것을 그만둡니다. 

모금액이 부족해지면 해외의 아이들이 살기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리카는 아버지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거금을 모금합니다. 

영화는 몇 번이고 훔친 돈을 모금 봉투에 담으면 즐거워하는 어린 리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돈을 훔치면서까지 모금해야했던 그녀의 마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다는 겁니다. 

그게 자기 만족이든 순수한 선의였던간에 말이죠. 


리카는 성인이 되고나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리카가 고객의 큰 돈을 빼돌리게 되는 계기는 어찌 보면 선의였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애인의 빚을 갚아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 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 역시 리카 자신이 원한 일이었다는 겁니다.  



그녀는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완벽하게 타인처럼 보이던 남편과도 그럭저럭 살아가고 미래의 생활을 위해 소박한 시계를 살 줄도 아는.

 
저는 이 영화가 한 여자의 물질을 향한 욕망 만을 그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그녀가 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것 자체가 리카가 지니고 있는 욕망의 목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남편이 사다준 값비싼 시계를 보고 리카는 묘한 표정을 짓습니다. 

물질적인 것에 만족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사랑없는 남편의 뻔한 선물이라고 할지라도 즐겁게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어린 리카가 훔쳐서 기부한 모금액은 학교에서 문제가 됩니다. 

수녀는 모금의 취지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며 강당에 모인 학생들을 향해 모금통을 없애겠다고 합니다. 

리카는 자기의 선의가 거부 당한 것에 분노합니다. 

아이들이 모금을 멈추었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내야 했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노력한 것이 

왜 훈계의 대상이 되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죠. 

억울하다고 따지는 리카에게 수녀는 묻습니다 

'그래서 이 돈은 어디서 난거죠?'


성인이 되어 리카가 벌이는 엄청난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카의 고객들이 지닌 돈은 숫자로만 존재할 뿐 사실상 쓰이지 않는 돈입니다. 

치매걸린 부자 할머니와 자기밖에 모르는 구두쇠 할아버지의 돈을 좀 꺼내어 쓴 들 

들키지만 않는다면 아무도 피해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간절할 돈이 사용 돼지 않고 있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효율적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거액의 학비를 지원받은 애인의 말처럼

리카가 누군가의 돈을 훔치고 난 후로 그녀의 삶과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변해버립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모든 일이 밝혀지고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져야하는 순간이 왔을 때 

리카는 빌딩의 커다란 창문을 깨고 밖으로 도망갑니다. 

그녀를 의심한 동료직원은 평생을 너무나도 성실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상상으로도 일탈이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창 밖으로 도망가기 전 리카는 그런 동료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이 감독이 관객에게 거는 말 같았습니다. 



영화는 리카라는 인물을 내세워 제대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외칩니다. 

제대로 살아 간다는 것은 각자의 인생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과정을 평가 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사람을 위한 돈이라고 할지라도 훔쳐서 낸 것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짜도 인생은 대충 넘어가 주지 않습니다. 

과정을 지키지 않은 지름길은 조금씩 균열은 만들어 내어 언젠가는 삶 전체를 흔들고 맙니다. 

고객에게서 빼돌린 돈으로 리카는 애인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었지만 

그 결과 정갈하게 봉투에 담아 빌린 돈을 갚고 열정적으로 리카를 사랑해주던 남자는 사라지고 

무능하고  거들먹거리는 사람과 쓸쓸한 이별을 하게 됩니다. 


영화 전체에 걸쳐 나오는 리카의 어린시절을 통해 종이달은 묵직한 주제를 던져줍니다.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

<종이달>은 그것이 너무나도 힘들어 끊임 없이 도망가는 리카에게 

뻔한 설교를 하거나 그녀가 품은 자유를 향한 욕망을 무턱대고 미화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무리 도망쳐도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진짜 삶의 모습과 

그 것에 끝까지 저항하는 리카를 통해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덧글

  • 2015/08/11 09: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8/14 16:1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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